공포

타인의 시선

작성일 2026-09-30 · 10,164자 · 약 21분 (분당 500자 기준)

매일 밤 현관 밖에서 정체 모를 소음이 들려오지만, 인터폰 화면 속 복도는 언제나 텅 비어 있다.

발행: TaleN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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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의 일상은 정교하게 짜인 시계태엽처럼 규칙적이었다. 프리랜서 번역가라는 직업 특성상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냈기에, 그녀에게 집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이자 유일한 안식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견고했던 평온함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주 사소한 소음이었다. 처음에는 복도를 지나가는 이웃의 발소리라고 생각했다. 낡은 복도식 아파트였기에 층간 소음이나 외부의 소리가 간혹 스며드는 일은 흔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점차 특정한 패턴을 띠기 시작했다. 매일 밤, 모두가 잠들 준비를 하는 자정 무렵이면 어김없이 현관문 밖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누군가 서성이는 발소리가 아니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숨을 죽인 채 문틈 사이로 집 안의 동태를 살피는 듯한 미세한 마찰음과 옅은 숨소리에 가까웠다.

오늘 밤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트북 화면의 하얀 빛이 거실의 어둠을 날카롭게 가르고 있을 때, 지안은 본능적으로 타이핑을 멈췄다. 적막이 흐르는 집 안에서 그녀의 청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그리고 곧,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가 시작되었다. 사각, 사각. 무언가 딱딱한 것이 현관문 표면을 아주 천천히 훑는 소리였다. 지안은 숨을 멈춘 채 현관 쪽을 응시했다. 소리는 불규칙하면서도 집요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문틈에 눈을 밀어 넣고, 거실에 앉아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단순한 착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소리가 너무도 구체적이고 생생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지안은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현관으로 향했다.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갈수록 소음은 더욱 명확해졌다. 누군가 정말로 거기 있었다. 문 너머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공포심과 동시에 정체를 밝혀내고 싶다는 강박적인 호기심이 치밀었다. 그녀는 현관 옆 벽면에 부착된 인터폰 화면으로 손을 뻗었다. 떨리는 손가락이 전원 버튼을 눌렀고, 작은 액정에 복도의 풍경이 나타났다. 화면 속 복도는 창백한 형광등 불빛 아래 적막만이 가득했다. 아무도 없었다. 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 구석구석을 살폈다. 복도 끝 계단실 입구부터 옆집 문 앞까지, 그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여전히 들리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인터폰을 확인하는 순간 소리가 멈췄다. 마치 상대가 그녀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일부러 숨어버린 것처럼.

지안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현관문의 외시경에 눈을 갖다 댔다. 좁은 렌즈를 통해 보이는 복도는 인터폰 화면보다 더욱 선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텅 빈 복도, 바닥에 굴러다니는 작은 먼지 뭉치, 그리고 무심하게 켜져 있는 복도등뿐이었다. 그녀는 문에 이마를 기댄 채 한참 동안 밖을 살폈다. 누군가 문 바로 아래 틈으로 몸을 숙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사각지대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하지만 아무리 살피고 들어도 밖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자, 지안은 온몸에 닭살이 돋는 것을 느꼈다.

거실로 돌아온 지안은 불을 모두 켜고 소파에 몸을 묻었다. 환한 조명 아래서는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머릿속의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소리는 분명히 들렸는데,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 모순적인 상황이 그녀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 검색창에 '현관 밖 소음', '스토킹 증상' 같은 단어들을 입력해 보았다. 수많은 사례가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자신의 상황처럼 소리는 나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경우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었다. 지안은 문득 자신이 느끼는 이 공포가 단순한 외부인의 침입 때문인지, 아니면 고립된 생활에서 오는 신경증인지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매일 밤 정해진 시간에 반복되는 그 소음만은 결코 환청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누군가 분명히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인터폰과 외시경이라는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그 정체를 잡아낼 수 없다면, 더 정밀한 도구가 필요했다. 지안은 어둠이 내린 거실을 둘러보았다. 평소라면 아늑하게 느껴졌을 공간이 이제는 곳곳에 숨은 구멍이 있을 것만 같은 낯선 장소로 변해 있었다. 특히 등을 돌리고 있을 때 느껴지는 그 시선의 압박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이제는 단순히 문을 잠그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침입자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지, 그리고 정말로 외부에 존재하는 것인지 확인해야만 했다.

결국 지안은 결단을 내렸다. 그녀는 노트북을 켜고 홈 CCTV 제품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고화질 렌즈에 야간 투시 기능이 탑재된 최신 모델들이 화면을 채웠다. 설치가 간편하고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확인이 가능한 제품 위주로 리스트를 추렸다. 평소 사생활 침해를 우려해 집 안에 카메라를 두는 것을 꺼렸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보다 정체 모를 존재에 대한 공포가 훨씬 컸다. 그녀는 가장 성능이 좋다고 평가받는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고 즉시 결제 버튼을 눌렀다. 내일이면 배송될 기기가 도착할 것이고,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의문표를 마침표로 바꿀 수 있을 터였다.

CCTV를 설치할 위치를 고민하며 지안은 거실 한복판에 섰다. 현관문을 정면으로 비출 수 있는 각도를 계산했다. 카메라가 설치되면, 문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혹은 자신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누가 움직이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체를 밝혀내고 나면 다시 예전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동시에, 만약 카메라에 잡힌 것이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안은 멈출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시선에 갇혀 사는 것보다, 잔혹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일 도착할 택배를 기다리며, 무거운 마음으로 불을 껐다.

다음 날 오후, 기다리던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지안은 상자를 뜯자마자 작은 렌즈가 달린 홈 CCTV 세 대를 꺼내 들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가장 먼저 현관문을 정면으로 비출 수 있는 거실 선반 위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렌즈의 각도를 세밀하게 조정하여 문틈 하나, 발판 하나까지 모두 화면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이어 거실 구석과 주방 입구 쪽에도 추가로 기기를 배치했다. 집 안의 모든 동선이 카메라의 감시망 아래 놓이게 된 셈이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실시간 화면을 확인하자, 흑백의 정적인 거실 풍경이 작은 액정 속에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지안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화면을 응시했다. 이제 더 이상 추측할 필요는 없었다. 소리가 들리는 순간, 화면 속에 그 정체가 고스란히 찍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것이 자신을 지켜줄 유일한 방패라고 믿으며, 불안한 마음을 억누른 채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집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지안은 평소보다 일찍 조명을 끄고 침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스마트폰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세 개의 분할 화면 속에서 집 안은 고요했다.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시계 바늘이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지안의 심장 박동은 빨라졌다. 그녀는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린 채 숨을 죽였다. 정적 속에서 자신의 거친 호흡 소리만이 귓가를 울렸다. 만약 이번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환청일까, 아니면 카메라조차 포착하지 못하는 무언가일까. 기대와 공포가 뒤섞인 묘한 긴장감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마침내, 그 소리가 들려왔다. 슥, 하고 무언가 문밖을 긁는 소리였다. 뒤이어 아주 미세하게, 누군가 문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만지는 듯한 달그락 소리가 이어졌다. 지안은 반사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으로 시선을 던졌다. 현관을 비추고 있는 첫 번째 카메라의 화면은 여전히 정지 화면처럼 고요했다. 아무도 없었다. 복도 조명이 희미하게 비치는 문밖에는 그 어떤 그림자도, 발자국도 포착되지 않았다. 지안은 혼란스러웠다. 귀로는 분명히 소리가 들리는데,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괴리감이 그녀를 덮쳤다. 그녀는 혹시 기기 오류가 아닐까 싶어 화면을 확대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고, 문은 미동도 없이 굳게 닫혀 있었다.

소음은 약 5분 동안 계속되었다. 때로는 누군가 문에 이마를 기대고 서 있는 것처럼 둔탁한 소리가 났고, 때로는 아주 가늘게 속삭이는 듯한 바람 소리가 섞여 들었다. 지안은 공포로 인해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인터폰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CCTV와 인터폰, 두 가지의 현대적인 감시 장치가 동시에 '아무도 없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는 여전히 생생했다. 이제 소리는 문밖이 아니라, 마치 문틈을 타고 집 안으로 스며들어 오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지안은 소름 끼치는 전율과 함께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분명히 그곳에 존재하며, 자신을 향해 집요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자 지안의 이성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 기계의 기록보다 자신의 감각이 전하는 경고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소음이 잦아들 무렵, 지안은 갑자기 밀려오는 강박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만약 소리가 밖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면?'이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녀는 황급히 스마트폰의 다른 화면들을 살폈다. 거실과 주방을 비추는 카메라들 역시 고요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큰 공포로 다가왔다.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전혀 없는데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침입자가 이미 집 안에 들어와 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혹은 처음부터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두운 거실 쪽을 바라보았다. 카메라의 사각지대, 소파 뒤편의 좁은 틈, 혹은 열려 있는 옷장 문 사이. 그 어디든 누군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집 전체가 거대한 함정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공간이 순식간에 낯설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벽지 너머에서, 혹은 천장 위에서 누군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이 가빠졌다. CCTV는 밖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했지만, 이제는 그 화면들이 오히려 그녀를 가두는 창살처럼 보였다. 화면 속의 텅 빈 거실은 평화로워 보였지만, 지안은 알 수 있었다. 카메라 렌즈가 닿지 않는 단 몇 센티미터의 틈새마다 정체 모를 시선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는 것을. 그녀는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보이지 않는 침입자가 자신의 등 뒤까지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강박적인 공포에 휩싸였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보이지 않는 적과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지독한 고립감뿐이었다. 지안은 차마 뒤를 돌아볼 용기를 내지 못한 채,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꽉 쥐었다.

지안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화면 속의 거실은 여전히 정적에 잠겨 있었고, 고요함은 오히려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녀의 신경을 긁어내렸다. 현관 밖에서 들려오던 소음은 어느덧 잦아들었지만, 그 공백이 주는 압박감은 이전보다 훨씬 무거웠다. 침입자가 없다면 대체 무엇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침입자는 이미 안으로 들어와 숨을 죽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전율이 흘러내렸다. 지안은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주변의 공기를 살폈다. 공기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방 안의 가구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그 지독한 위압감을. 그것은 단순한 착각이라기엔 너무나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압력으로 다가왔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눈동자가 자신의 뒷덜미를 집요하게 쫓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본능적인 공포가 근육을 굳게 만들었다. 만약 정말로 누군가 서 있다면, 그 순간 마주하게 될 낯선 이의 얼굴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지안은 다시금 스마트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CCTV 영상 속에는 침대 위에 웅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작게 보였다. 화면 속의 그녀는 무력하고 초라해 보였다. 지안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했다. 화질이 깨지며 픽셀이 뭉개졌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주변을 훑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침대 주변은 깨끗했고,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거실 역시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찰나였다. 화면 속의 자신이 느끼는 고립감이 현실의 그녀에게 전이되듯,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은 더욱 강렬해졌고 이제는 마치 누군가의 숨결이 목덜미에 닿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공포가 극에 달하자 지안의 사고는 마비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초자연적인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소음은 사라졌지만, 대신 정적이 소리보다 더 큰 굉음처럼 그녀를 압도했다. 지안은 입술을 깨물며 다시 한번 화면을 응시했다. 그때였다. 화면 속에서 아주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진 것은.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카메라의 앵글은 침대를 중심으로 방 전체를 비추고 있었고, 그 배경에는 전신 거울이 놓여 있었다. 거울은 방 안의 풍경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었기에, 화면 속에는 지안의 뒷모습이 두 번 겹쳐 보이고 있었다. 한 번은 실제 그녀의 모습으로, 그리고 또 한 번은 거울에 비친 상으로. 지안은 홀린 듯 그 거울 속의 형상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잔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면을 확대해 세밀하게 관찰하던 그녀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커졌다. 찰나의 순간, 아주 미세한 시간 차가 발생한 것이다. 화면 속의 실제 지안이 몸을 살짝 움츠렸을 때,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형상은 0.1초 정도 늦게 움직였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적 지연이나 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인 움직임이었다. 거울 속의 지안은 실제의 지안이 움직인 궤적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녀의 동작을 흉내 내는 것처럼 보였다. 지안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숨을 멈추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번에는 일부러 손가락을 까닥여 보았다. 화면 속의 실체는 즉각 반응했지만, 거울 속의 상은 아주 짧은 틈을 두고 뒤늦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짧은 찰나, 거울 속의 형상이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지안 자신이 지은 표정이 아니었다. 거울 속의 존재는 그녀의 외피를 쓰고 있었지만, 그 내면에는 전혀 다른 의지를 가진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다. 소름 끼치는 깨달음이 그녀의 전신을 휩쓸었다.

지안은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을 감시하던 그 기분 나쁜 시선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그녀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실제 거울이 놓인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는 여전히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거울이라는 유리 벽 너머에, 혹은 거울과 자신 사이의 좁은 틈새에, 정체 모를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들렸던 현관 밖의 소음들은 외부인의 침입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부의 존재가 외부로 나가기 위해, 혹은 외부의 누군가를 유인하기 위해 낸 가짜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지안은 깨달았다. 소음의 근원지는 현관 밖이 아니라, 바로 지금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거울 쪽이었다. 거울 속의 상이 미세하게 늦게 움직였던 이유는, 그것이 반사된 이미지가 아니라 그 너머에서 자신을 관찰하며 타이밍을 맞추던 '다른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거울 속의 지안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실제의 지안은 공포에 질려 굳어 있었지만, 거울 속의 형상은 더 이상 그녀를 흉내 내지 않았다. 거울 속의 '그것'은 천천히 고개를 갸우뚱하며, 현실의 지안을 향해 서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안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거울 속의 존재가 천천히 손을 들어 유리 표면에 갖다 대자, 매끄러운 유리 표면에 작은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마치 물결이 이는 것처럼 유리가 일렁였고,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이제 물리적인 압력을 넘어 그녀의 영혼을 짓누르는 듯했다. 지안은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집 안에서, 가장 익숙한 자신의 모습 속에 숨어 있던 낯선 침입자와 마주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도망칠 곳 없는 폐쇄된 공간과, 자신을 똑같이 닮은 괴물과의 지독한 대면뿐이었다.

지안은 숨을 들이켜며 뒷걸음질 쳤지만, 등 뒤의 벽이 차갑게 닿았다. 거울 속의 존재는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움직임을 흉내 내지 않았다. 그것은 고개를 약간 비스듬히 꺾은 채, 기괴할 정도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고 있었다. 그 순간, 지안의 귓가에 다시 한번 그 소리가 들려왔다. 툭, 투둑. 현관문 밖에서 들려온다고 믿었던 그 규칙적인 소음이었다. 하지만 지금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분명히 정면, 바로 눈앞의 거울이었다. 지안은 전율하며 깨달았다. 그동안 자신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 소리는 외부인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울이라는 투명한 감옥에 갇힌 '또 다른 자신'이, 이쪽 세계로 나오기 위해 안쪽에서 유리벽을 필사적으로 두드렸던 소리였다.

소음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거울 속의 존재가 갑자기 유리 표면에 손바닥을 강하게 밀착시켰다. 찌르르한 진동이 공기를 타고 전해졌다. 지안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구멍이 꽉 막힌 듯 쇳소리만 새어 나왔다. 거울 속의 '나'는 이제 확신에 찬 표정으로 지안을 응시했다. 그것의 눈동자에는 갈망과 굶주림, 그리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먹잇감을 마주한 포식자의 잔인함이 서려 있었다. 지안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실체라는 것을 느꼈다. 거울의 표면은 이제 액체처럼 흐물거리며 기괴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갑자기 거울 속의 존재가 거칠게 손을 뻗었다. 챙그랑,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단단했던 유리 표면에 가느다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안은 반사적으로 두 손을 들어 앞을 가로막았지만, 깨진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냉기가 손끝을 얼려버렸다. 유리에 생긴 균열은 순식간에 거미줄처럼 퍼져 나갔고, 그 틈 사이로 정체불명의 검은 그림자가 스며 나왔다. 지안은 도망치려 발을 뗐지만, 발바닥이 바닥에 달라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거울 쪽에서 강한 인력이 발생해 그녀의 몸을 서서히 끌어당기고 있었다.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지안이 간신히 소리를 내뱉었지만, 거울 속의 존재는 대답 대신 비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깨진 유리 조각들을 헤치며 천천히 밖으로 몸을 밀어냈다. 유리 파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한 집안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거울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온 존재는 지안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카락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지안이 평소에 짓지 않는 오만한 표정까지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제 완전히 물리적인 실체가 되어 지안의 거실 바닥을 밟았다. 거울 밖의 공기를 처음 마시는 듯, 그것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지안은 자신의 몸이 급격히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그녀의 가슴팍을 낚아챈 것처럼, 몸 전체가 거울의 깨진 틈새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항하려 팔을 휘둘렀지만, 이미 감각은 무뎌져 있었고 시야는 급격히 어두워졌다. 지안은 경악하며 눈앞의 광경을 보았다. 거울 밖으로 완전히 나온 '그것'이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이제는 거울 속에 갇혀버린 지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잔인하게 손을 들어 거울 표면의 깨진 틈을 매끄럽게 메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유리가 다시 합쳐졌고, 지안은 완전한 정적 속에 갇혔다. 이곳은 소리도, 온기도 없는 차갑고 무채색인 공간이었다. 지안은 미친 듯이 유리벽을 두드렸지만,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울 밖의 존재는 만족스러운 듯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지안이 항상 앉아 있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진짜 지안의 삶을, 그녀의 이름과 일상을 이제는 자신이 소유하게 되었다는 승리감에 젖은 뒷모습이었다. 지안은 거울 너머로 멀어져 가는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제 자신이 누군가의 시선 속에 갇힌 유령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지안의 자리는 완벽하게 대체되었고, 집 안에는 오직 낯선 침입자의 고요한 숨소리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