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은 손목의 단말기에 연결된 가느다란 케이블을 통해 중앙 제어실의 보안망에 깊숙이 침투했다. 벨라토르 가문의 말단 관리자라는 직함은 그녀에게 최적의 위장막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투명한 존재로서, 그녀는 경연 후보자들이 생체 인식기를 통과할 때마다 쏟아지는 방대한 유전자 데이터를 은밀히 가로챘다. 화면 위로 복잡한 염기서열들이 폭포처럼 쏟아졌고, 하은은 그 속에서 마스터 키의 동기화 패턴을 추적했다. 가문의 정점에 선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절대적인 권한은 특정한 파동의 유전적 공명으로 작동했다. 하은은 수집한 데이터들을 대조하며 마스터 키가 반응하는 임계점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조금만 더, 이 패턴의 연결 고리만 찾아내면 찬탈의 경로가 열린다.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코드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추방당한 이후 금지된 공학을 익히며 갈고닦은 감각이 날카롭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이 경연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빼앗긴 삶을 되찾기 위한 거대한 도박이었다. 하은은 입술을 깨물며 데이터의 파편들을 하나로 맞추어 나갔다. 승자의 유전자가 마스터 키와 결합하는 순간, 그 틈을 타 권한을 가로챌 가상의 신호를 삽입할 계획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그녀는 자신이 완벽하게 숨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정적을 깬 것은 날카로운 경고음이 아니라,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서늘한 목소리였다. "관리자 치고는 지나치게 탐욕스러운 손길이군, 하은아." 하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벨라토르 가문의 실권자이자 그녀의 큰오빠인 민성준이 서 있었다. 성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은이 조작하던 단말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반가움이나 애정 따위는 없었다. 오직 불량품을 바라보는 냉혹한 평가만이 담겨 있었다. 하은은 황급히 케이블을 뽑으려 했지만, 이미 시스템은 성준의 권한으로 잠겨 있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하은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성준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네가 이 저택의 공기를 마시기 시작한 순간부터. 결함 있는 유전자는 숨겨도 냄새가 나는 법이지. 네가 배운 그 조잡한 공학이 이곳의 완벽한 보안을 뚫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성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하은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그는 천천히 다가와 하은의 턱을 거칠게 잡아 들어 올렸다. 그의 손길은 차가웠고, 압도적인 권력의 무게가 그녀를 짓눌렀다. 성준은 하은의 정체를 이미 꿰뚫고 있었으며, 그녀가 잠입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을 유희처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정체가 탄로 난 하은에게 남은 것은 선택지가 없는 절망뿐이었다.
성준은 하은을 놓아주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단순히 쫓아내기에는 네 노력이 가상하더구나. 그래서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경연의 '대조군'이 되는 거야." 대조군이라는 말에 하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후보자들의 우월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투입되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희생양을 의미했다. 유전적 결함이 극명한 개체를 옆에 둠으로써, 선택받은 자들의 완벽함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잔인한 장치였다. 성준은 신호를 보내 가문의 경비병들을 불러들였다. 그들은 하은의 팔을 거칠게 잡아 끌어올렸고, 그녀는 저항할 틈도 없이 중앙 홀의 투명한 원통형 캡슐 속으로 밀어 넣어졌다. 캡슐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자, 외부와의 소통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성준은 캡슐 외벽에 설치된 제어판을 조작하며 잔인하게 선언했다. "모두 보아라. 이것이 우리가 도려낸 실패작의 표본이다. 이 비참한 유전자가 너희의 고귀함과 어떻게 다른지 똑똑히 지켜보도록." 하은은 캡슐 벽을 주먹으로 쳤지만, 소리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관리자가 아니라, 전시된 표본이자 조롱거리가 되어 수많은 후보자의 시선 앞에 던져졌다. 성준의 계획은 완벽했다. 그녀를 공개적으로 파멸시킴으로써 가문의 위계질서를 다시 한번 공고히 하려는 심산이었다.
캡슐 내부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기계음이 울리며 하은의 전신을 조이는 금속 띠가 나타났다. 성준이 설계한 유전자 억제 장치였다. 장치가 작동하자 하은의 신경계를 타고 강렬한 전기 충격과 함께 압박감이 밀려왔다. 이 장치는 단순히 신체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스스로 개조한 유전적 변이와 공학적 장치들의 작동을 강제로 억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숨이 가빠지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몸 안의 에너지가 강제로 잠기는 감각에 하은은 신음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억제 장치는 그녀의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가장 고통스러운 지점을 정확히 자극하고 있었다. 성준은 캡슐 밖에서 그 광경을 만족스럽게 지켜보며 후보자들에게 설명했다. "이 장치는 결함 있는 유전자가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너희는 이 대조군을 통해 자신의 완벽함을 확신하게 되겠지." 하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성준의 오만한 눈빛을 응시했다. 육체는 구속되었고 권한은 박탈당했지만, 그녀의 눈 속에서는 여전히 독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억제 장치의 압박 속에서도 하은은 생각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한 지금이야말로, 적들의 방심을 이용해 가장 치명적인 덫을 놓을 수 있는 기회라고. 그녀는 강제 참여하게 된 이 잔혹한 경연 속에서 살아남아 성준의 오만을 깨뜨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성준이 조작 패널의 다이얼을 천천히 돌리자, 하은을 가둔 투명 캡슐 내부로 날카로운 고주파 진동과 함께 푸르스름한 빛이 쏟아졌다. 유전자 억제 장치는 단순히 신체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은이 가진 특정 열성 인자를 강제로 활성화해 신경계에 직접적인 과부하를 주는 잔인한 도구였다. 하은의 전신이 활처럼 휘어지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성준은 그 비명을 음악이라도 되는 양 감상하며 캡슐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후계 후보자들에게 하은을 가리키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보아라. 이것이 정제되지 않은 유전자의 비참한 말로다. 너희가 누리는 완벽함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이 낙오자의 고통을 통해 다시금 깨닫길 바란다."
후보자들은 경멸과 호기심이 섞인 눈빛으로 하은을 내려다보았다. 누군가는 혀를 찼고, 누군가는 승리감에 도취해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하은은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새겼다.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통증이 의식을 갉아먹었지만, 그녀는 이 고통이 성준이 설계한 정교한 계산의 일부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하은을 철저히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경쟁자들에게는 공포를 심어 복종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하은은 입술을 깨물며 신음 소리를 억눌렀다. 지금 그녀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은 무력한 희생양의 모습뿐이었고, 그것이 오히려 성준의 방심을 끌어낼 가장 효과적인 미끼가 될 터였다.
고통이 정점에 달해 근육이 경련하기 시작했을 때, 하은은 캡슐 내부의 구조적 결함을 찾아냈다. 성준이 설계한 장치는 완벽해 보였지만, 대조군을 가두기 위해 급조된 구형 모델의 프레임을 일부 재사용했다는 맹점이 있었다. 하은은 몸을 비틀어 왼쪽 손목의 구속구와 캡슐 내벽 사이에 아주 미세한 틈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은 억제 장치의 전자기파가 일시적으로 상쇄되는 사각지대였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끝이 떨렸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정밀한 계산이 끝난 상태였다. 그녀는 관리자로 잠입했을 당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자신의 피부 아래 작은 캡슐 형태로 심어두었던 생물학적 촉매제를 떠올렸다.
이 촉매제는 벨라토르 가문의 표준 유전자 체계와는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 변이 단백질이었다. 평소에는 비활성 상태로 혈관 속에 잠들어 있었지만, 특정 주파수의 진동과 강한 압력이 가해지면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하은은 억제 장치가 뿜어내는 고통스러운 진동을 오히려 이용하기로 했다. 그녀는 구속구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손목의 피부를 깊게 긁어 상처를 냈고, 그 틈으로 응축되어 있던 촉매제를 혈액 속으로 강제 주입했다. 차가운 액체가 혈관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가자, 신경을 찌르던 고통이 일순간 잦아들며 기묘한 정적이 찾아왔다.
하은은 다시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떨었다. 성준은 그녀가 여전히 자신의 통제 하에 있다고 믿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하은의 혈액 속에서 촉매제는 이미 무서운 속도로 증식하며 성질을 바꾸고 있었다. 이 물질은 단순히 하은의 고통을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공기 중으로 미세하게 기화되어 캡슐의 환기 시스템을 타고 외부로 흘러나가도록 설계된 '유전적 전염원'이었다. 벨라토르 가문의 후계 후보자들은 모두 유사한 유전자 조작을 거친 최적화된 신체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 촉매제는 그들에게 치명적인 불일치를 유도하는 트리거가 될 것이었다.
하은은 캡슐 벽에 머리를 기대며 가늘게 눈을 떴다. 이제 촉매제는 보이지 않는 안개가 되어 후보자들의 호흡기로 스며들고 있었다. 당장은 아무런 증상이 없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정교한 유전적 균형은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독이 되는 상황, 즉 유전적 충돌이 일어나는 순간 그들은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제거해야 할 생물학적 오류로 인식하게 될 터였다. 하은은 입가에 아주 희미한, 하지만 잔혹한 미소를 띠었다. 성준이 만든 이 화려한 감옥은 이제 적들이 서로를 물어뜯게 만들 거대한 실험실로 변모하고 있었다.
성준은 하은의 상태가 안정된 것을 보고 장치의 출력을 낮추었다. 그는 하은이 완전히 굴복했다고 확신하며, 후보자들에게 다음 단계의 경연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제 너희는 이 대조군이 보여준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우월함을 증명해야 한다." 성준의 목소리는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하은은 그의 등 뒤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는 후보자들의 눈빛을 읽어냈다. 촉매제가 그들의 신경계에 안착하며 아주 작은 거부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는 이유 없이 손끝을 떨었고, 누군가는 갑작스러운 두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은은 다시 눈을 감고 깊은 호흡을 내뱉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산소 부족과 고통으로 인해 헐떡이는 가련한 희생양의 모습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녀는 이제 성준이 설계한 이 잔혹한 게임의 규칙을 완전히 뒤바꿀 준비를 마쳤다. 후보자들 사이에 심어놓은 유전적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는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것은 그들이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할 때 성준의 완벽한 설계도 함께 무너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하은은 캡슐 속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읊조렸다. 가장 완벽하다고 믿는 순간, 가장 비참하게 무너뜨려 주겠다고. 그녀의 침묵은 이제 포식자의 기다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은이 살포한 생물학적 촉매제는 보이지 않는 안개가 되어 경연장 내부를 가득 채웠다. 고통스럽게 숨을 헐떡이던 하은은 캡슐의 유리벽 너머로 후보자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은 처음에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는 듯 미간을 찌푸렸으나, 곧 상황은 기괴하게 변했다. 촉매제는 후보자들의 체내에 잠재되어 있던 우월한 유전자 서열을 자극해, 서로의 존재를 ‘보완해야 할 동료’가 아닌 ‘제거해야 할 유전적 오류’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첫째 후보자였다. 그는 옆에 서 있던 경쟁자의 목덜미를 향해 짐승 같은 속도로 손을 뻗었다. 이유 없는 적대감과 본능적인 혐오가 그들의 이성을 빠르게 잠식했다. 정교하게 설계된 벨라토르의 후계자들은 이제 서로의 숨통을 조이는 포식자로 변해 있었다.
경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아하게 서 있던 후보자들은 서로의 옷가지를 찢고 살점을 파고들며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들은 더 이상 가문의 품위를 논하는 귀족들이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유전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불순함을 걷어내려는 생물학적 기계에 가까웠다. 하은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성준이 그토록 자랑하던 ‘최적의 유전자’들이 서로를 부정하며 무너지는 모습은 그 어떤 예술 작품보다 완벽했다. 그녀는 억제 장치로 인한 통증조차 잊은 채, 자신이 설계한 파멸의 교향곡을 감상했다. 후보자들의 비명과 거친 숨소리가 캡슐의 진동을 타고 하은의 전신에 전달되었다. 그것은 승자의 환희이자, 버려진 자가 되찾은 권력의 전조였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성준이 제어 콘솔 앞으로 급히 다가왔다. 그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화면에 나타나는 수치들을 훑었다. 후보자들의 유전자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요동치며 붉은색 경고등을 내뿜고 있었다. 성준은 이것이 단순한 돌발 상황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는 하은을 쳐다보았으나, 그녀는 여전히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가련한 희생양의 연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성준은 다급하게 시스템 복구 명령을 입력했다. 하지만 그가 명령을 내릴 때마다 시스템은 더욱 불안정하게 반응했다. 하은이 미리 심어놓은 덫이 성준의 관리자 권한과 충돌하며 데이터의 연쇄 작용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전자 데이터들이 서로 엉키고 설키며, 경연장의 환경 제어 시스템마저 오작동하기 시작했다.
성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는 자신의 완벽한 설계가 이토록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경연장의 조명이 점멸하며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 퍼졌고, 바닥의 배수구에서는 정체불명의 냉각수가 역류해 흘러나왔다. 후보자들은 이제 서로를 공격하는 것을 넘어, 시스템이 내뿜는 불규칙한 전기 자극에 발작하며 괴로워했다. 성준은 떨리는 손으로 콘솔의 긴급 정지 버튼을 눌렀지만, 화면에는 '권한 불일치'라는 메시지가 차갑게 떠올랐다. 관리자로서의 그의 권한이 누군가에 의해 교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그는 이것이 하은의 소행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작 유전적 결함자일 뿐이었고, 이 정도 수준의 시스템 간섭을 일으킬 능력이 없어야 했다.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이런 짓을…!”
성준이 소리를 질렀지만, 하은은 대답 대신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유리벽을 긁었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고통이 서려 있었지만, 그 깊은 곳에는 성준을 향한 조소와 경멸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성준은 다시 한번 콘솔을 두드렸으나, 시스템은 이제 후보자들의 유전자 정보를 무작위로 섞어버리는 치명적인 오류 단계에 진입했다. 한때 가문의 자랑이었던 유전자 지도들이 디지털 쓰레기로 변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이제 경연은 후계자를 가리는 장이 아니라, 누구의 유전자가 더 빨리 파괴되는지를 겨루는 도살장으로 변모해 있었다. 성준은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가문의 정체성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혼란은 가속화되었다. 후보자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그의 신체 일부가 급격한 세포 변이로 인해 뒤틀리기 시작했다. 성준은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가 설계한 억제 장치와 촉매제가 결합해 예상치 못한 돌연변이를 유도한 것이다. 이제 경연장의 모든 장치는 성준의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후보자들이 허덕였고, 강화 유리벽 너머의 풍경은 마치 지옥의 한 조각을 옮겨놓은 듯 처참했다. 성준은 자신의 권위가, 그리고 그가 구축한 완벽한 세계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해야 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깨달은 성준은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다. 그는 품 안에서 은색의 작은 칩, 가문의 절대 권한인 '마스터 키'의 활성화 장치를 꺼내 들었다. 마스터 키는 시스템의 모든 논리를 강제로 덮어쓰고 물리적 제어권을 회수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평소라면 이 권한을 사용하는 것이 가문의 수치이자 최후의 수단이었으나, 지금의 성준에게는 체면보다 상황 수습이 우선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마스터 키를 메인 슬롯에 삽입했다. 장치가 맞물리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정적을 깨뜨렸고, 경연장의 모든 조명이 일순간 암전되었다가 다시 강렬한 백색광으로 타올랐다.
성준은 마스터 키의 권한을 활성화해 강제로 시스템을 재부팅하고, 후보자들의 유전적 충돌을 억제하는 강제 동기화 신호를 보내려 했다. 그의 손가락이 명령 실행 버튼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하은이 설치한 덫을 강제로 밀어내고, 다시금 이 공간의 절대적인 지배자로 돌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마스터 키가 활성화되는 순간, 하은은 캡슐 안에서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성준이 결국 마스터 키를 사용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기다리던 진정한 기회였다. 마스터 키가 시스템의 모든 문을 강제로 열어젖히는 찰나, 그녀는 자신의 혈액 속에 잠복해 있던 특수 코드를 시스템망으로 송출할 준비를 마쳤다.
성준이 버튼을 누르자, 경연장 전체에 거대한 파동이 일었다. 후보자들의 움직임이 일시적으로 멈췄고, 요동치던 데이터 그래프들이 강제로 수평을 그리며 고정되었다. 성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상황을 통제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마스터 키가 연 '절대 권한의 통로'를 통해 하은의 의지가 시스템의 심장부로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을. 성준이 권한을 회복했다고 확신한 그 순간, 시스템의 중심 서버에는 성준의 이름이 아닌, 지워졌던 이름 ‘민하은’이 관리자 권한의 최상단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이제 경연장의 주인은 성준이 아니라, 그가 희생양으로 던져 넣었던 하은으로 바뀌어 있었다.
성준은 자신의 권한이 회복되었다고 믿으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그는 깨닫지 못했다. 그가 활성화한 마스터 키의 절대적인 통로가 하은에게는 가장 완벽한 침투 경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하은은 캡슐 안에서 차갑게 미소 지으며, 시스템망을 통해 미리 준비해둔 최후의 수단인 '교차 오염' 촉매제를 작동시켰다. 이것은 단순한 해킹이 아니라, 마스터 키가 열어젖힌 유전적 동기화 경로를 통해 자신의 결함 있는 인자를 성준의 완벽한 설계도 속으로 강제로 밀어 넣는 생물학적 침공이었다. 하은은 신경계로 연결된 시스템 링크에 강렬한 의지를 실어 보내며, 성준이 자랑하던 순수성의 영역을 자신의 인자로 더럽히기 시작했다.
"이게 네가 말한 완벽한 통제니, 오빠?"
하은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경연장에 울려 퍼졌다. 성준은 갑작스럽게 심장을 옥죄는 통증에 가슴을 부여잡고 무너졌다. 그의 혈관 속에서 정교하게 설계되었던 유전자 사슬이 하은의 불규칙한 인자와 충돌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완벽함이라는 견고한 성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성준의 피부 위로 붉은 반점이 돋아났고,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제멋대로 뒤엉키며 신체 기능이 급격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는 공포에 질려 바닥을 긁어댔다. 가문의 상징이자 절대적 권력의 증거였던 '순수성'이 하은이라는 불순물에 의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성준은 경련하는 입술을 달싹이며 하은을 노려보았으나, 이미 주도권은 완전히 넘어간 상태였다. 시스템 인터페이스의 모든 지표가 하은의 유전적 파동에 동기화되었고, 마스터 키의 최종 승인 권한은 성준의 손을 떠나 하은의 의지 아래 귀속되었다. 이제 이 거대한 유전자 정원의 모든 생사여탈권은 버려졌던 결함자, 하은의 손안에 있었다.
찬탈의 과정은 잔혹하고도 완벽했다. 성준은 결국 거품 섞인 숨을 내뱉으며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그가 그토록 경멸했던 '열성 인자'의 흔적들이 이제는 그의 신체 곳곳에 지울 수 없는 흉터처럼 각인되었다. 하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승리의 여운을 만끽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그녀의 신경계를 강타했다. 강제 동기화의 대가는 가혹했다. 타인의 권한을 찬탈하기 위해 자신의 유전자를 과부하시킨 촉매의 부작용이 서서히 그녀의 감각 기관을 잠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시야의 가장자리가 회색빛으로 흐려지더니, 이내 코끝을 간지럽히던 정원의 향기가 사라졌다. 하은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곧이어 청각의 일부가 먹먹해지더니 피부에 닿는 공기의 질감마저 무뎌졌다. 영구적인 마비였다. 그녀는 가문의 지배자가 되었지만, 그 권력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감각들을 제물로 바친 셈이었다. 화려하게 피어난 유전자 꽃들의 색채도,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속삭임도 더 이상 그녀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하은은 텅 빈 눈으로 자신이 차지한 저택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그녀의 뜻대로 움직였고, 그녀는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 정원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그토록 갈망했던 정원의 아름다움은 이제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무채색의 풍경일 뿐이었다. 차가운 정적만이 감도는 집무실에서, 하은은 감각이 사라진 손가락으로 자신의 왕좌를 쓰다듬었다. 만져지기는 하지만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한 지배자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고독하고 메마른 주인으로 남게 되었다.